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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화훼장식의 역사

한국 화훼장식의 역사 - 1) 삼국시대 - (1) 고구려

한국화훼장식의 역사 

 

 꽃의 사용은 인간의 의식주 발달과 더불어 신을 모시고 숭배하는 신수사상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 

환웅이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곰과 결혼하여 단군왕검을 낳았다는 신화에서 알 수 있듯이 신단수는 신이 내려오는 통로로 산격화 된 곳이다 .

그 후 신단수는 당산나무 서당나무 대신 '큰 막대 (솟대) '를 '솟터'에 세워 영적세계와 교감한다고 믿었다. 

이렇게 신께 바치거나 청하는 행위가 나중에는 병에 꽃을 꽂아 제단에 올려놓는 것으로 솟대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또한 사람이 죽은 경우와 무당의 굿 등에도 꽃을 사용하였으며 , 벽화를 장식하거나 기우제를 지낼 때 나무가지를 사용하기도 했다 .

 

1) 삼국시대 

 

 삼국시대에는 매우 다양한 신앙을 갖고 있었다.  조상신, 산천신의 다양한 신앙들이 존재하다가 중국으로부터 불교가 전래되었다. 

 

(1) 고구려 

 

  고구려는 소수림왕 시대에 불교가 유입되었고 고국양왕때 불법을 숭상하도록 하였다. 고구려는 불교의 도입과 함께 서역과 중원의 문화가 들어오면서 넓으 세계관을 갖게 되었고, 체계적인 교육과 사회정비로 우리나라 최초 국립대학인 '태학'이 설립되었다

 

① 고분벽화

  

  고분벽화를 통해 그시대의 생활이나 문화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초기의 고분벽화는 거친 이미지였지만 중반 이후의 고분벽화는 섬세하고 예술성이 뛰어나다. 

 고구려 시대의 벽화를 통해서 꽃꽂이의 조형형식을 찾아 볼 수 있으며, 쌍영총위로 풍성하게 부부상의 꽃을 꽂아둔 그림을 보며  귀족을 중심으로 일상생활 에서도 꽃꽂이가 유행이였음을 알수 있다. 

 

* 쌍영총 병화도 

- 병화도 : 이미 종교적인 목적이나 사례의 용도가 아닌 관상을 위한 장식용 꽃꽂이가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붉은 화기에 꽃을 풍성하게 꽂아둔 화병의 형태가 보여진다.

 

- 천정벽화 ( 연꽃무늬 ) : 연꽃은 꽃잎이 많고 화려하며 꽃잎의 가장자리는 뾰족하게 표현되어 있다.

                                        첫번째 굄돌에는 당초 , 두번째 굄돌에는 봉황과 구름 , 세번째  굄돌에는 당초 , 천장의 뚜껑에는

                                        연꽃을 그려넣었다.

 

* 강서대묘 : 묘실 벽면에 네 마리 짐승을 그린 사신도하로써 오방의 표현이 명확하고 굄돌에도 장식이 되어있다. 

 

* 안악2호분 

- 비천상 :  두손으로 연꽃이 가득담긴 수반을 들고 나는듯이 우아한 선과 흐름이 아름다움이 특징이다.

 

② 공예

 

 금속공예를 문양을 입체적으로 제작한 것이 많으며 매우 화려하고 강인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

무늬는 매우 정교하며 아름답다.

 

* 금제태환이식 : 고구려의 대표적인 금제 귀걸이로 굵고 둥근고리에 작은 장식이 특징이다.

                           연결고리와 드리개에 넝무늬와 꽃무늬를 금 알갱이로 표현했다.

 

* '연가칠년' 이 새겨진 부처 : 불상은 둥근 연꽃무늬의 대좌 위에 입상하였으며 뒤쪽에 큰 광배를 지니고 있다.

 

③ 기와   

 

   고구려는 중국과 가까운 이점으로 기와의 제작기술을 빨리 받아드릴 수 있었다. 초기에는 구름무늬, 연꽃무늬로 볼륨감이 매우 강한 꽃입안에 모서리선이 새겨지고 끝을 뾰족하게 하고 있다. 6세기이후에는 연꽃이외에 다른 다양한 꽃들과 함께 서로 조화를 이루었다. 기와의 전체적인 특징은 선이 매우 굵고 양감이 매우 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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